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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しあと

    特別史跡 百済寺跡

    • [公開日:2025年4月9日]
    • [更新日:2025年4月9日]
    • ページ番号:49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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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百済寺跡とは

    奈良の東大寺(とうだいじ)の大仏をつくるとき、陸奥国(むつのくに)、今の宮城県や福島県あたりの長官だった百済王敬福(くだらのこにきし きょうふく)は、そこでとれた金をさしあげたことにより、河内国(かわちのくに)、今の大阪府の東部・枚方市から河内長野市にかけての長官になりました。この百済王敬福の一族である「百済王氏」は朝鮮半島にあった百済(くだら)の王族の末裔(まつえい)(子孫)です。

    その百済王氏が枚方市の中宮(なかみや)に、今から1250年くらい前の奈良時代後半に建てたと考えられているのが、百済寺跡です。

    これまで発掘調査によって、このお寺は正面入口となる「南門」・次に位置する「中門」・本尊(ほんぞん)(お寺で最も大切な仏像)を安置する「金堂(こんどう)」・僧が経典を講義したりするための「講堂」・僧が集まって食事をとる「食堂(じきどう)」と考えられる北方建物・北に位置する門が一直線上に並びます。中門と金堂は「回廊(かいろう)」という廊下によりつながっており、その内部には東西2つの塔が並んでいました。また、お寺の大きさは一辺140メートルほどの正方形で、築地(ついじ)という土の塀で囲われていました。お寺の中心となるエリアのほかには、少なくとも4つに区画されたエリアがあったことも明らかになっています。建物の基礎である基壇には凝灰岩(ぎょうかいがん)を方形に切った石を用いるなど、当時の最先端技術がもちいられており、当時、都があった平城京(へいじょうきょう)内に建てられた大寺院と同じような立派さをほこっていました。これらのことからも、古代のある時期に百済王氏が最上級クラスの氏族(一族)であったことがわかります。

    百済寺跡は昭和27年(1952)には、特に歴史的・学術的価値が高い遺跡(いせき)(人間が活動した痕跡)として、国の特別史跡に指定されています。特別史跡は大阪府では大坂城跡(おおさかじょうあと)と百済寺跡の2つしかない、とても大切な場所です。


    百済寺跡航空写真

    百済寺跡全景(南から、平成5年撮影)

    百済寺跡イメージ図

    百済寺跡復元図(イメージ)

    English

    The History of the Kudaradera Temple Site

    At that time that Todaiji Temple was constructed in Nara, Kudara-no-Konikishi Kyofuku was the Governer of Mutsu, which is equivalent to present-day Miyagi and Fukushima Prefectures. He used gold collected within his jurisdiction and donated it. Through this donation he was promoted to the Governor of Kawachi, which is the land from Hirakata City to Kawachi Nagano City in eastern part of present-day Osaka Prefecture. Kudara-no-Konikishi Kyofuku was the descendant of the Baekje Royal Family of the Korean Peninsula.

    It is believed that the Kudaradera Temple was built in the Nakamiya area of Hirakata City by Kudara-no-Konikishi during the Nara Period, roughly 1250 years ago. Through excavations it was discovered that the main gate of the temple, the South Gate, Middle Gate, Main Hall (where the principal Buddha is enshrined), Lecture Hall (where monks gathered to study sutras), Northern Building (where monks gathered to eat) were all aligned on the center axis.The Middle Gate and Main Hall were connected by a corridor that was flanked by two pagodas on the east and west.

    The temple was a 140 meter x 140 meter square that was surrounded by a rammed earth wall. The excavations also revealed that, apart from the main temple area, there were four other separate districts within the compound. The most advanced technology available at the time was used, such as using squared tuff stones for the foundation of the building. The splendor of the temple must have echoed the great temples of Heijokyo. Through this, we can understand that Kudara-no-konikishi was part of the uppermost eschelon of that time period. The ruins of Kudaradera Temple were designated as a Special National Historic Site in 1952 for their high historical and academic value (and as a sign of human activity). In Osaka Prefecture, the only Special National Historic Sites are the Kudaradera Temple Ruins and the Osaka Castle Ruins, which makes this a particularly important location.


    한국어

    백제사터 해설

    나라 도다이지 절의 대불을 만들 때 무쓰국, 지금의 미야기현 및 후쿠시마현 부근의 장관이었던 백제왕 경복은 그곳에서 채취한 금을 바침으로써 가와치국, 지금의 오사카부 동부 히라카타시에서 가와치나가노시에 걸쳐 장관이 되었습니다. 이 백제왕 경복의 일족인 ‘구다라노코니키시 씨’는 한반도에 있었던 백제 왕족의 후손입니다.

    구다라노코니키시 씨가 히라카타시의 나카미야에 지금으로부터 1250년경 전의 나라 시대 후반에 세웠다고 여겨지는 것이 백제사터입니다.

    지금까지의 발굴 조사에 따르면 이 절은 정면 입구인 ‘남문’, 그다음에 위치하는 ‘중문’, 본존(절에서 가장 중요한 불상)을 안치한 ‘금당’, 승려가 경전 강의를 하기 위한 ‘강당’, 승려가 모여서 식사를 하는 ‘식당’으로 여겨지는 북방 건물, 북쪽에 위치한 문이 일직선상에 나란히 있었습니다. 중문과 금당은 ‘회랑’이라는 복도로 연결되고 그 내부에는 동서 2기의 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습니다. 절의 크기는 140미터×140미터 정도의 정사각형으로 축지라는 토담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절의 중심이 되는 지역 외에는 적어도 4개로 구획된 지역이 있었던 것도 밝혀졌습니다. 건물의 기초에는 응회암을 사각형으로 자른 돌을 사용하는 등, 당시의 최첨단 기술이 도입되어, 당시 수도가 있었던 헤이조쿄 내에 세워진 대사원에 필적하는 훌륭함을 자랑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고대의 한 시기에는 구다라노코니키시 씨가 최상 계급의 씨족(일족)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제사터는 1952년에 특히 역사적 및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인간이 활동했던 흔적)으로서 국가 특별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특별 사적은 오사카부에서는 오사카성터와 백제사터의 2곳밖에 없는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中文(简化字)

    百济寺遗迹的解说

    建造奈良东大寺大佛时,现宫城县及福岛县附近的陆奥国长官百济王敬福,将在当地赚到的钱上交而成为了现大阪府东部枚方市至河内长野市一带的河内国的长官。百济王敬福一族的“百济王氏”是朝鲜半岛百济王族的后裔(子孙)。

    百济王氏在枚方市的中宫,推测是距今大约1250年的奈良时代中后期所建造的百济寺遗迹。

    根据迄今为止的挖掘调查,寺院正面入口的“南门”--位于“中门”安放本尊(寺院最重要的佛像)的“金堂”--僧侣授课的“讲堂”--僧侣就餐的北侧建筑“食堂”--北侧的门,呈一条直线排列。中门和金堂通过“回廊(长廊)”连接,其内部东西各有一塔。另外,整体寺院为约140米×140米的正方形,由被称为筑地的土墙围起。除寺院中心区域以外,至少又划分成了4个区域。建筑地基使用了切割成方形的凝灰岩石等,采用了当时最先进的技术,与都城所在地平城京内所建造的大寺院拥有着同等的巍峨庄严,因此而著称。也可以从此得知,古时百济王氏是最高级的氏族(一族)。

    百济寺遗迹在1952年,作为在历史和学术上具有特殊价值的遗迹(人类活动的遗迹),被指定为国家特别遗迹。特别遗迹在大阪府仅有两处,“大坂城遗址”和“百济寺遗迹”,所以这里是非常重要之处。


    アクセス

    関連リンク